정반대 움직임 보이는 채권시장
미국 연준(Fed)이 4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75bp) 인상 이후 올해 마지막 기준금리 결정에서 빅 스텝(50bp)으로 금리 인상 폭을 조절했다. 그러나 여전히 물가 안정을 강조하며,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지속되고 있음을 강조했다. 최종금리(terminal rate)도 높였다.
12월 FOMC는 누구라도 반론을 제기하기 어려운 매파적인(hawkish) 통화정책 이벤트였다. 인상 폭을 조절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이례적인 인상 폭의 범주에 속하는 50bp 인상이 이뤄졌고, 파월 의장은 조목 조목 금융시장에서 자신들이 여전히 인플레이션 견제 목적의 정책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파월 의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인플레이션 해소의 진전이 느려 더 높은 금리가 오래 유지될 것이며, 물가가 확실히 내려갈 때까지는 금리 인하를 고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어떤 상황에서도 물가 목표를 변경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른 연준 위원들도 파월 의장의 발언이 원맨쇼에 그치지 않기 위해 힘을 보탰다. Fed는 점도표를 통해 2023년과 2024년 기준금리 전망(중위값 기준)을 종전 각각 4.6%, 3.9%에서 5.1%, 4.1%로 나란히 상향했다.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2023년까지 추가로 이어질 수 있으며 동시에 인상 사이클 상의 최종금리 수준 역시 높아졌다. 아울러 점도표 상으로 어떤 위원들도 2023년까지 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다.
이러한 파월과 연준 위원들의 철통 같은 매파적인 통화정책 기조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향후 기준금리 경로에 대한 채권시장 참여자들의 전망은 오히려 FOMC 이전보다 강하게 '인하'를 프라이싱하기 시작했다. 실제 CME FedWatcher(연방금리선물)에 따르면 2023년 3분기나 4분기 말에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전망하는 비중은 1주일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삼엄했던 매파적인 입장을 통해 웬만해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였던 상황이 무색할 정도로, 채권시장은 인하에 대한 전망을 더욱 강화한 셈이다.
채권시장은 무엇을 보고 있는걸까
그렇다면 채권시장은 과연 어떤 빈틈을 통해 2023년 하반기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강화한 것일까? 다음은 필자가 평가하는 그 원인들이다.
첫째, 점도표를 상향함에도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정점에 이르고 있다는 기대가 강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번 점도표에 따르면 Fed는 2023년과 2024년 금리 수준을 모두 상향했으나, 2024년 수치가 2023년에 비해 낮다. 적어도 2024년 경에는 기준금리 인하가 가능하다는 것을 Fed 차원에서도 인정한 것이다.
게다가 사실상 최종금리(terminal rate)로 추정되는 수치가 5.1%(중위값)으로 제시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과 같은 인상 속도를 감안하면 내년 1분기에는 기준금리 5.1%에 도달하게 되니, 그 즈음에는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마무리된다는 추론이 가능할 수 있다. 이후에 그 다음은 어떤 시점이 됐던 ‘기준금리를 변경한다면 인하’라는 피봇(pivot) 기대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지난 11월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시장 참가자들의 반응이 나온 바 있다. 당시 통화당국은 내년에도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했지만, 채권시장은 통화긴축 기조가 `당분간` 더 이어질 수 있다는 통화정책방향 문구와 함께 “당분간은 3개월 전후”라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유권 해석에 더욱 흥분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경기침체 맞다면 금리를 인하해야
둘째, 수익률 곡선에서 형성된 경기 침체 예상을 Fed가 새로 내놓은 경제 전망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인정했다는 사실이다.
Fed는 2022년 GDP 성장률 전망을 0.5%로 제시하고 내년 성장률이 0.5%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Fed가 제시한 수치를 기준으로 환산할 때 올해 4분기 미국의 GDP 성장률은 전년동기에 비해 -5.1%로 하락할 뿐만 아니라, 2023년 역시 분기별로 몇차례 역(逆) 성장이 불가피하다.
소위 경기 침체의 시그널로 알려진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는 올해 4월부터 TB 10년 - 2년 구간의 역전이 나타났고, 7월부터 거의 모든 구간에서 본격화됐다. 이후 9월과 12월에 Fed는 경제 전망을 통해 큰 폭의 성장률 하락 혹은 침체 우려를 수치 상으로 반영하게 발표했다.
이를 시간 상으로 재구성하면 채권시장의 경기 예측을 Fed가 후행적으로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 같은 경기 인식에 대한 Fed의 추종(追從)이 기준금리 전망 과정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쳐 채권시장의 기준금리 인하 예상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즉, 채권시장은 경기 침체를 사전에 예상했고, Fed가 이를 뒤늦게 인정한 상황이라면 침체가 발생할 경우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이란 시장의 기대 역시 충분히 구현될 여지가 크다는 시각이다. 아울러 한 발 더 나아가 채권시장의 통화당국에 대한 매우 노골적인 기준금리 인하 요구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채권시장이 Fed를 이끄는 모양새?
필자는 이처럼 Fed가 매우 매파적인 정책 기조를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채권시장의 내년도 기준금리 인하 기대는 여전히 상존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강화됐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이는 올해 Fed가 채권시장에 대해 주도권을 가지고 꾸준히 정책 행보를 이끌어왔던 국면에서의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장 Fed에 대한 채권시장 차원의 강력한 기준금리 인하 기대를 시사하는 수익률곡선 평탄화(혹은 장단기 금리 역전)가 더 큰 폭으로, 더 길게 지속될 여지가 커졌다. 아울러 적어도 내년까지는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겠다는 Fed의 의지와 이와 무관하게 빠른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채권시장 간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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